1. 논리란 규칙이다
우리가 존재 하고있는 세계는 어떠한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세계는 언어로써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세계와, 언어는 공통적으로 논리라는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요즘 언어로 패턴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는 논리를 세계와, 언어를 담는 어떠한 구조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게 된다
실제로 세계는 구조로써 자신을 나타내고 그 구조는 논리라는 틀로써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논리라는 구조에 담을 수 없는 개념은 세계에 나타날 수가 없는 것이다
논리학자들은 비논리적인 것은 신조차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신앙심이 깊은 종교인이 발끈하게 되면 각이 4 개인 삼각형을 신이 만들 수 있느냐?” 라는 질문을 던지면 삼각형이라는 정의 자체에 각이 3개여야 한다는 것이 지정되어 있으므로 신에 대한 신실한 믿음으로도, 인간인 이상은 각이 4 개인 삼각형을 상상할 수 조차 없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모순된 상상(논리가 없는) 즉 어떤 것이 존재하며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인식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모든 것을 뚫어버리는 창, 모든 것을 막는 방패 이 두 개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이 둘이 부딪히는 그 순간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참임을 안다
사실의 총합인 세계완 달리 비논리를 논할 수 있는 영역은 언어이다
사실이 비논리적인 것은 불가능하나, 언어로만은 모순을 논할 수 있다
세계는 논리라는 규칙(패턴)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불이라는 존재를 이해할 때
불이라는 명제가 참임을 보장하는 전제가 필요하게 된다
단순히 불이라는 대상자체만 으로는 사실로 나타날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불은 ~~ 하다는 사태를 알아야 불이라는 존재를 이해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은 뜨겁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불은 뜨거운 상태이므로 우리는 불은 뜨겁다는 전제하에 불을 불로써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불이 뜨겁다 만으로는 사태이지 사실이 아니다
불이 혼자서 타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불이 뜨거운 상태로 나타나기 위해선 어떠한 조건이 있어야 한다
불이 뜨겁다는 사태 만으로는 불의 속성이 될 뿐이지 사실이 될 수 없다.
자 불이 뜨겁다라는 사태가 참이라는 전재로 예시를 들어보자
뜨거운 불이 물표면 위에서 불타오르고 있다 ->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뜨거운 불이 장작 위에서 불타오르고 있다 -> 이것은 사실이다
이렇듯 사실은 대상만으로는 세계의 나타날 수 없고 존재의 어떠한 사태가, 또 다른 어떠한 존재의 사태와 관계를 맺는가 라는 조건이 전제가 될때에만 하나의 사실로써 세계에 나타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태와, 사태가 관계를 맺어야만 사실이 된다(이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에 총합이 곧 세계가 된다.
그래서 요약을 해보자면, 존재가 있다
그 존재에 사태라는 전제가 있고, 그 존재에 사태라는 명제는 그 사태가 다른 어떤 사태와 관계를 맺는가라는 사실들의 총합이 곧 세계인 것이다
존재->사태->사실->세계
그런즉 논리는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존재가 사실로써 나타나기 까지 연결되는 방식이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논리라는 도구(추론)를 통하여 모르는 영역에서 아는 영역으로 점진적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언어의 논리는 형식(규칙) 일뿐 논리만으론 공허하다
사태(전제) 1. 나무에는 원숭이가 있다.
사태(전제) 2. 이것에는 원숭이가 없다
결론 . 그러므로 나무가 아니다 .
이것은 어떤가? 말이 되는가? 틀리다고? 그렇다
하지만 어디에서 틀린 것일까 ? 나무에는 원숭이가 있다는 전제 1번이 틀렸단 이야기이리라
왜냐하면 나무에는 원숭이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식적으로는? 만약 전제 1과, 2에 동의한다면 결론을 피할 수 있을까?
없다. 이는 경험적으로는 틀릴지 몰라도 형식적으로는 완벽하게 올바르다
우리는 형식적인 올바름과, 경험적인 올바름을 구별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둘은 생각보다 예리하게 나뉘어 있다. 논리는 가치를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이것이 진리라고 생각해야 할 이유도 전혀 없다.
<철학이란 무엇인가>(이하 생략) -26p
러셀이 관념론을 인정하며 동시에 부정하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 , 어떤 이들은 약간 물음표를 느낄지도 모른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가능하단 이야기인데 논리적이지만 진리가 아니라는 가정을 러셀은 무척 당연하게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논리에 기대하는 가장 큰 오해 중 하나이다
논리가 사람들이 으레 생각하는 가치 있는 진리 따위를 보장해 준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논리는 인류가 평등하다느니, 착하게 살아야 한다느니 하는 이러한 진리를 만들어 내거나 보장 해주지는 못한다
명료한 의미에서 논리는 그런 것들과 아무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논리는 그저 순수한 규칙이기 때문이다
논리학은 전제에 함축된 결론을 이끌어내는 학문이다
전제가 잘못되었다면,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잘못된 결론을 마구잡이로 뽑아낼 수 있다
즉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열등하다” 라는 전제에서는 아주 무서운 결론들이 논리적으로 합당하게 나올 수 있다
논리학 책을 한 번이라도 본 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 모든 논리 증명은 그냥 시작하지 않는다
'만일 이것이 참이라면' 이라는 전제가 우선 주어지고 시작한다
당연한 말로, 그런 시작점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논리만 가지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위에서 타당한 논리 구조를 가지고 원숭이가 없는 나무는 나무가 아니라는 헛소리를 만들 수 있음을 보았다
논리라는 그릇은 결국 무언가를 담는 보존만 할 뿐
그 자체만으로는 어떠한 형태도 만들어낼 수 없는 공허함이다
3. 객관적 사실인 팩트와 논리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논리는 단순하게 우리가 못을 박을 때나, 못을 제거할 때 쓰이는 망치나 무언가를 절단해야 할 때 쓰는 절단기처럼 연장이나, 도구 같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전 단계인 사실이나 사실에 전 단계인 사태나 사태에 전 단계인 존재를 파악하기 위한 도구로써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계나 진리 같은 것에 대해서 논할 때는 사실과 일치한다 ‘설득적이다/설득력 있다’, "타당하다"라고
표현을 해야지 이에 대한 구분 없이 무턱대고 ‘논리적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논리성을 평가하는 잣대는 논증 구조를 형식적으로 잘 갖추었는지를 따지는 것이 사전적으로도, 본 뜻상으로도 알맞다.
우리가 단단한 금속 같은 것을 자르려고 절단기를 사용할 때 이 절단기의 날이 쇠로 이루어져 있는지 고무로 이루어져 있는지 쇠로 이루어져 있다면 날이 녹슬지는 않았는지 즉 도구로써 적합한지 한번 살펴보는 것과 논증 구조가 형식적으로 잘 잡혀있는지 확인하는 것을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듯싶다.
4. 논리는 자체만으론 공허하지만 분명한 건 이 세상의 틀이다
그렇다면 논리란, 인간의 인식 틀에 불과한가? 인간만 이런 논리적 사고를 하고 있는가?
글쎄,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논리가 규칙 그 자체일 것이다
플루타르크가 말한 예를 들어보자
주인을 찾아 나선 개를 관찰했더니
주인이 남긴 냄새의 자취를 따라가던 개는 세 갈래 길에 도달했다
개는 먼저 맨 왼쪽 길을 따라 걸으며 주인의 냄새를 찾았다
그러다가 멈추어 돌아왔다 다음은 중간 길을 향했다
개는 다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오른쪽 길로 접어든 개는 이번에는 전혀 킁킁거리지 않으며 앞으로 내달렸다
이 사례는 동물에게는 논리적 추론 능력이 없다는 많은 이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동물들이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이 외에도 찾고자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개가 만약 ‘비논리적’ 이라면 다음과 같이 행동해야만 한다
전제 1.나는 주인의 냄새가 있는 길로 간다
전제 2.이 길에 주인의 냄새가 있다
결론 난 다른 길로 간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한가? 개가 주인의 냄새가 없는 길로 갈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제1과 공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는 자신이 인식하든 말든 간에 결국에는 논리적으로 행동한 것이다 .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법칙에 따라 사고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사물이 이러한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
<철학이란 무엇인가> -86p
결론
인간은 세계와 그 세계의 요소로서 포함되어 있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 논리적인 추론을 한다
그 과정에서 철학이나 수학같은게 발전된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에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라 라는 말에서 나왔듯이 일단 윤리나, 종교, 예술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들은 배제하도록 하자
철학이나 수학같은 것을 사용할때 그 과정을 추론하여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 논리라는 도구가 필요할 뿐 논리 자체에서는 어떠한 결괏값도 도출해 낼 수 없다
컴퓨터를 보면 이해할 수가 있는데 컴퓨터는 논리적 알고리즘이 물질화된 형태이다 컴퓨터야 말로 진정으로 논리의 아들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컴퓨터가 계산한 답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지만, 다른 사람이 도출한 어떤 결론을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컴퓨터란 단지 주어진 논리회로에서, 주어진 입력값(Input)에 대해 움직일 수 없는 결괏값(Output)을 내놓을 뿐, 여기엔
어떤 타협이나 생때같은 것도 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두뇌 역시 주어진 과제에 대한 논리적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이성 '이라는 프로세서가 작동하고 있지만, 문제는 합리적 사고를 하게 하는 이성 이외의 변숫값인 감정이 작용하고, 충분히 잘못된 출력값을 만들 수 있는 사이비 사상 (개똥철학 등등)이라는 변숫값이 또 개입됨으로써 엉뚱한 답을 출력할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주어진 입력값이라는 것에 대해서 주목해야 하는데 사람이 컴퓨터에게 입력값을 주지 않게 되면 컴퓨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변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반복해 보자면
1. 모든 논리 증명은 그냥 시작하지 않는다 . “ 만일 이것이 참이라면 ”이라는 전제가 우선 주어지고 시작한다
당연한 말로, 그런 시작점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논리만 가지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2. 논리는 전제에서 결론을 이끌어가는 추론이다 . 전제가 잘못되었다면,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잘못된 결론을 마구잡이로 뽑아낼 수 있다
“ 논리는 존재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오직 존재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논리라는 것이 규칙에 불과하고 존재를 보존하는 그릇 같은 것에 불과하다면, 존재라는 것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처음 입력값(Input) 즉 제1원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결괏값(output) 이 없기 때문에 이 세계에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게 되고 우리는 아무것도 추론할 수가 없고, 우리의 세상은 오로지 감각적인 경험과 통일되지도 연결되지도 않는 감각들의 불균형한 총체로만 받아들이게 되며, 그 외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추론’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논리 규칙에 따라 사고한다는 것 그리고 이 우주가 그 논리구조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는 믿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모든 연역의 출발점이 되는 최초의 명제 제1원인은 결코 연역에 의해 도출될 수 없다
연역은 전제로부터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이므로 일정한 명제를 출발점으로 하기 때문이다.
제1원인이라는 명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별 수 없이 우리의 삶에서 관찰과, 경험으로 최대한 연역적인 전제들을 하나둘씩 찾게 된다
예를 들어
1. 요즘 mz세대들은 예의가 없다
2. 성식이는 mz세대이다
3. 성식이는 예의가 없다
이와 같이 전제와의 논리적 관계만으로 필연적으로 결론이 도출되는 추론을 연역추론이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시작되는 삼단논법은 전제가 참이라면 결론도 참이기 때문에 전제가 옳고 추론 방식이 타당하다면
결론이 거짓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물론 위에 예시는 사실이 아니다 ^^;;)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이런 식으로 찾아낸 사실을 통해 논리적으로 추론하여 또 다른 지식을 얻는다 .
아래에 귀납적인 추론을 예시로 들어보겠다
4. 성식이의 친구들도 mz세대이다
5. 따라서 성식이의 친구들도 예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의심을 품을 수도 있다 실제로도 사실이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 명제는 100%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 그렇기에 귀납법에는 ‘ 타당하다 ’ 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
연역추론이 논리적 필연성을 보증하는데 반하여 귀납추론은 개연성을 보여줄 뿐이요, 귀납추론은 거의 확률적으로 수렴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결론의 내용이 전제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아는 지식 모두가 이 직관적인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우리가 다루는 명제들이 하나 같이 완벽하고 절대적인 사실을 보장할 수는 없다
여자란 무엇인가?, 남자는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근본적인 판가름은 논리로는 할 수 없으며 , 어디까지나 관찰과 경험 그리고 그에서 비롯된 추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결국 , 순수하고 절대적이라는 논리라는 영역은 언제나 불완전한 나의 경험과 관찰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타인의 경험과 관찰을 통한 귀납적 전제에서부터 시작하게 된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를 인지함으로써 우리는 한계를 명료히 알고, 우리들 사이의 전제를 확인하고, 그에 따라 그 전제를 공유하는 이들 끼리의 타당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일상생활에 있어서 우리는 “ 고기를 불에 익혀먹으면 생으로 먹는 것보다 더 소화가 잘되고 맛이 좋다”라는 전제를 공유하는 이들하고는 같이 고깃집에 가서 삼겹살을 배 터지게 구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전제를 공유하지 아니하고는 불가능하다
결국 논리적인 추론없이 ‘아무것도 믿지말라’는 철학의 지침이 된다
모름지기 자기 자신의 합리적인 이성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의 말도 믿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 방점을 찍은 것이 데카르트의 합리론이고(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것을 잣대로 주관과 객관을 통합한 것이 칸트의 인식론이며 의심을 활용해 논리적 추론을 이끌어낸 것이 바로 헤겔의 변증법이다
철학의 첫발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길을 닦아준 선생들에게 존경심 정도는 괜찮지만, 맹목적인 믿음은 일종의 신앙처럼 변질되고 말게 된다
우상숭배를 하지말라는 것은 초기 기독교나 불교에서 그토록 강조하던 내용이었는데 현대에 이르러선 정말 다양한 형태로 변질된 것 같다
맹목적인 믿음 즉 무지에서 나오는 체험들 역시 일종의 성령 체험과 같은 환영이 될 수밖에 없다
환영을 만들어서 보는 뇌의 작용일 뿐인 것이다
뇌는 상상하고 믿는 것을 현실로 구연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무기는 오직 추론하나 뿐이라고 생각한다
눈은 안 보이지만 의심이라도 있기에 이곳저곳을 더듬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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