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원 육도윤회 세계와 반복되는 팔자
인과율의 법칙에 따라 사건들은 사건들을 낳는다
삶이란 이렇게 이미 저지른 일에 대한 단죄의 성격을 띤다
유기체의 행동이 그 유기체를 구성하는 유전자들의 합 즉 게놈이 낳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을 유전자 결정론이라 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기체의 가장 근본적인 본질을 유전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인간의 사회적인 행동도 결국 유전자의 좌우된다는 주장이다
모든 반복은 중독이다
유전자는 중독을 통해서 유기체를 지배한다
유전자가 첫 번째로 추구하는 목적은 '생존'이다
그래서 인간은 생존을 위해 투쟁보다는 도피를, 노력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을 비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최근에서야 세상이 비교적 안전하게 바뀐 것뿐이지, 선사시대부터 비교적 최근까지는 한 번의 모험에 실패가 곧 개체의 '죽음'을 불러올 확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유전자의 이러한 강제적인 명령은 매우 타당한 결론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아주 병신 같고, 역겨운 위선자라 할지라도 본인 스스로는 자신이 매우 특별한 존재라는 신념을 가진다는 점이다
타인이 볼 때는 매우 불편하게 여겨질 수 있으나, 개체의 입장에서는 매우 타당한다 볼 수 있는데,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는 에고의 사고방식이 없다면, 모든 개체들은 삶을 지속할 이유를 못 찾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생존'이라는 목표를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유전자의 입장에서 '자살'은 유전자가 바라는 전개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고의 이러한 기능은 생명체가 계속 삶을 살아가도록 힘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긴 하지만, 양날의 검으로도 작용을 하는데 '생존'이라는 동물적인 목표를 별개로 한 인간으로서 성장을 불가능하기 만들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봤을때 아무런 특별한 점이 없는 자신을 특별하다고 진심으로 착각을 하게 되면, 사람은 정진할 생각을 안 하게 되고, 건방져지며 게을러지기 때문이다
모든 경전에서 가장 강조하는 내용중 하나가 왜 겸손일까? 한번 생각해보자
개인의 입장에서 세상은 단지 피드백 거울일 뿐이다.
몸관리를 안 해서 약하면 괴롭힘 당하고, 공부를 안 해서 무식하면 바보라고 놀림당하고, 자기 관리를 안 해서 외모가 볼품없다면 버림 당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세상의 피드백일 뿐, 모든 일들은 공식대로 정확히 일어나고 있으며, 여기에 잘못되는 것과 부당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이 나는 모든 결과는 본인이 선택에 따른 결과로 본인이 응당 받게되는 열매일 뿐, 스스로를 불행에 빠진 드라마 속에 주인공이라 착각하는 것은 조금 아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주 어이가 없는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다.
불교에 《법화경(法華經)》에서는 '육도윤회에 세계란 어떠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명 상태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며, 범부(凡夫)가 끊임없이 욕망에 지배당하여 좌우되는 것을 육도윤회라고 한다.'라고 설명한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모든 반복은 중독이다
사주팔자라는 게 사실 별게 아니다
모든 사건들은 과학적으론 필연적이지만, 존재론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우발적으로 체험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닥쳐오는 불행을 우연적으로 받아들이고 억울하다는 감정을 가지게 된다
이로 인해서 인간이 변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요한계시록 22장 11~12절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
...
뉴턴의 관성의 법칙은 존재에게도 그대로 작용한다
비겁한 한 자는 계속 비겁할 것이다
게으른 자는 계속 게으를 것이다
사랑이 없는 자들은 계속 그렇게 부정적인 파동에 머물러있을 것이다
의리를 저버리고 안정을 도모한 자는 끝까지 '의'를 품지 않을 것이며
한번 겁쟁이는 영원한 겁쟁이이며, 간사한 무리들은 계속 그렇게 비천한 삶을 연명할 것이다
이 모든 선택들이 이미 '생존'이라는 허상에 의해 결정되어 있으며, 그것이 사주팔자 즉 운명으로 정해진 것이다
이 모든 운명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지'뿐이다
니체는 영원회귀를 통해 이 문제를 아주 잘 제시했지만 아쉽게도 충분히 전개하지는 못했다
상대적으로 불행한 인간은 불행한 삶을 반복해야 하고 상대적으로 행복한 인간은 행복한 삶을 반복해야 한다면,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란 정말 불공평한 것일까?
영원회귀를 긍정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똑같은 삶을 반복하는 것, 그것을 행복으로 받아들여야 한는가?
불행한 삶이 예정되어 있다면 그것 또한 긍정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전후, 좌우, 상하라는 세 방향의 집합이므로 3차원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인간은 항상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살기 때문에 (x, y, z)의 좌표만으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가 없다.
공간뿐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라는 한 방향의 흐름으로 진행되는 시간을 포함하여 4차원 시공간에 살고 있다고 표현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며 정말로 우리가 4차원 세상에 살고 있다면 3차원 공간에서 길이, 면적, 공간적 위치를 마음대로 조절하고, 시간 축값도 조절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따라서 시간의 축과 3차원 공간의 축을 별개의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고 우리의 무대는 지금 반박의 여지가 없는 3차원 세상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4차원 시공간과 4차원 공간은 매우 다른 의미입니다)
2차원과 3차원의 비교를 통해 4차원 바탕 가설 세워보기
3차원 세상에서 사는 우리가, 4차원과 그 위에 상위차원을 상상하는 것은 2차원에 사는 존재에게 3차원을 상상해 보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어렵고 있을 수 없는 일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는 귀납 가설을 세워봄으로써 고차원에 대한 가설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위 사진은 rpg게임으로 유명한 '메이플스토리'이다
이 게임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되는 횡스크롤 방식의 게임이다.
보다시피 '메이플스토리'라는 세상에서는 상하(上下)와 전후만이 있는 2차원 세계이다
그리고 화면밖에서 게임을 하는 우리는 게임 캐릭터를 기준으로 해서 좌우에서 그들의 세계를 지켜본다.
게임 캐릭터가 인지하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위치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게임 세상은 한눈에 파악할 수가 있다
2차원인 게임 캐릭터가 뒤를 돌지 않아도 3차원 세상의 우리는 뒤에서 다가오는 적을 발견하고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법칙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3차원에서 다른 1차원의 모든 방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3차원에서 다른 2차원의 모든 방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3차원에서 같은 3차원의 모든 방향을 한 눈에 볼 수 없다
- 높은 차원에서 다른 낮은 차원의 모든 방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4차원에서 다른 3차원의 모든 방향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 세계까지는 간단한 그림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4차원부터는 표현의 한계라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4차원을 예측해 보기 위해 3차원을 연속으로 배열해 보자
3차원을 연속하면 단순히 공간만 연속되는 것이 아니고 공간 내부의 사람도 연속적으로 배치될 것이다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까지도 과거, 현재, 미래에 무수한 '나'가 동시에 존재하며 여러명의 '나'가 만약 과거, 현재, 미래에 시야를 공유할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3차원 공간의 모든 시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4차원 공간에 사는 존재가 3차원 FPS게임을 한다면 같은 시간에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방향의 시야를 보거나 공유할 수 있으므로 3차원 공간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굳이 시선을 돌릴 필요 없이 후방이든 측방이든, 내 주변의 위험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대의 CCTV화면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관제실을 한 번 그려보면 이해가 좀 더 쉬울 것이다.
물론 '완벽히' 모든 화면을 한 시야에 담을 수는 없겠지만 같은 시간대에 여러 장소에 대한 '나'의 시야가 존재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3차원 공간 중에서 가장 4차원 세계와 흡사한 장소라 말할 수 있겠다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2차원과 3차원의 관계의 연관성을 생각해 볼 때 3차원과 4차원의 관계도 비슷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으며 하나의 직윤면체가 동일한 시간에 여러 장소에 위치함으로써 연속으로 배열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4차원과 더 나아가 5차원을 경험해 볼일이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가설을 세워보고 그 세계를 그려볼 수는 있으며 앞으로 고차원 세계에 대해 다루는 어떤 미디어를 보더라도, 분석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 계기를 마련해 보자
결론
4차원 공간 입장에서 보면 3차원 존재가 주장하는 시간과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의 장면처럼 그저 같은 4차원 공간일 뿐이다
각 동물 개채의 다양한 상황에서의 선택은 유전적으로 이미 결정되 있으며, 이는 선택의 따른 책임 또한 이미 받게 된다라는 뜻이므로 과거, 현재,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유전자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만 이기적인 결정을 하도록 프로그램 되어있으므로 그 개체에게 '자유의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개체는 객관적으로 자신이 어떠한 존재든 간에 논리를 무시하고 스스로 특별한 존재라는 신념을 끊임없이 되뇜으로써 자신의 삶의 당위성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주장한다
본질적으로 생존과 편안함만을 위한 삶은 발전도, 열매도 없는 허망한 것이며, '의식확장'의 의지를 가지고 끊임없이 의식을 확장시키는 것 많이 유일하게 '유전자'에 강제적인 명령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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