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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불교

알아차림(사띠) 정신으로 감정을 통제하자

by 카페인 뱀파이어 2023. 4. 18.

자연에서 도시를 바라보며 명상?

알아차림(사띠)이란?

알아차림은 고대 인도어인 빠알리어 사띠(sati)의 번역어입니다
어떤 대상을 인식하는 것과 정신을 차리다는 의미가 결합된 말입니다.

알아차림은 자기 스스로가 '나'의 객관적인 관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알아차림에 기원은 불교수행자들이 수행을 시작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자각하기 위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기 계발을 왜 하는 것일까요?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더 많은 힘과, 지식을 가지기 위해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등등 이유는 가지각생이지만 결국 그 끝은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우리는 최종 목표인 자아실현을 위해서 자기 계발을 합니다

어느 한 사람 정확히 똑같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자신만의 고유한 사명을 갖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만의 사명을 찾으려 하지 않고, 남들이 주입시키는 헛된 목표를 자신의 사명인 양 착각에 빠져 바둥거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사명은 남이 가르쳐줄 수 없습니다

의식 깊숙이 감추어진 무의식의 속삭임에 귀 기울일 때 힌트가 조금씩 주어질 뿐입니다

 

매슬로우의 인간의 5단계 욕구설

 

임상심리학자인 매슬로우(A. H.Maslow)는 1934년 자신의 임상실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눠서 매슬로우 욕구 이론을 발표하였습니다
매슬로우 이론을 요약하면 인간은 각자 만의 내부에 잠재하고 있는 욕구가 상대적 중요성에 따라서 나눠진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부터 최상위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5단계로 나눠져 있다고 하네요

하위단계의 욕구가 충족이 되면 상위단계의 욕구가 등장하면서 최종적으로 자아실현의 욕구에 도달하게 되는 원리입니다.

물론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더 많은 심리적 요인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대체적으로 일반사람들이 생각하는 범위는 이 안에서 결정된다고 이 이론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연예인들이나, 부자들처럼 4단계 까지 단계를 클리어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삶의 완성은 5단계인 자아실현까지 도달해야 그제야 한 개인으로서의 삶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깨달음'이라는 단어로 표현을 사용합니다

아 물론 불교에서도 깨닫고 나서도 완전한 끝은 아니고 부처님이나, 공자님 같은 여러 성현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전체에 전반적인 성장을 위해 교학을 해야 한다고 언급하였습니다

우리에 뇌가 마냥 이기적일 것만 같지만, 사실 인생에 있어서 최고 수준에 행복중 하나는 타인이 성장하고, 변화되는 모습을 직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체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 당장 알아차림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

알아차림은 '자각'의 시작입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 욕구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부모, 선생님, 사회의 욕구였다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상황을 뒤집어봐서 그 욕구가 진짜 내 것인가, 진짜 내 동기인가를 파악해 봐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나, 학교, 친구들, 학교, 성인이 되어서는 사회에서 알려준 지식들을 바탕으로 한치에 의심 없이 무의식적으로 살아갑니다

물론 부모님이나, 친구들, 선생님들이 '어디 한번 너도 나처럼 ㅈ돼 봐라' 하면서 의도적으로 가스라이팅을 거는 것은 아니겠죠

 

하지만 연장자들이 가르쳐주는 그 지식들, 과연 그 지식들이 어디 출처에서 나오는 걸까요?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려 하고, 체감해 봐도 지금 사회가 문제없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개개인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더더욱 아닌 것 같고요

그래서 그 다지 신뢰할 수 없는 지식인건 분명해 보입니다

지금 현실은 말 그대로 헬조선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생각도 못하고 그저 체념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지금 사회 구조로는 당연히 알코올중독자들과, 마약중독자들, 정신병이 없을 수가 없는 사회입니다

 

 

벼룩을 병 안에 가둬놓고 뚜껑을 닫아 버리면 1미터를 거뜬히 점프하던 벼룩이 30센티 밖에 못 뛰는 것처럼

꼭 지금이 중세시대가 아니라도 누군가나, 어떤 세력이 작정하고 계획적으로 생각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주입시켜서 사람들을 정신적인 한계, 시스템에 벽, 즉 매트릭스에 가둬버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체계적으로 생각을 주입시켜 새뇌시켜 놓으면요

우리는 교육을 열심히 받고 잠재력을 잃어버린 채 30m밖에 못 뛰는 벼룩들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생각 없는 공무원들은, 생각 없는 공무원들만 양산해 낼 수 있을 뿐이니까요

우리 같은 일반인들끼리 하는 사소한 가스라이팅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가스라이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 한번 같지 못한 채 사회가 주입시켜 놓은 생각이나 이념대로 자아실현에 기회조차 같지 못하고 이데올로기, 부정적인 감정에 새뇌당한 채 의식에 흐름대로 살아갑니다

 

당연히 깊은 곳에서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에 찝찝하고, 공허한 감정이 때때로 들겠지만 느낌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지능마저 상실해 버렸기에 알 수 없는 복잡한 느낌이나, 감정 같은 건 술이나, 1차원적인 쾌락으로 잊어버리고

다음날엔 똑같이 같은 패턴으로 살아가는 식으로 죽을 때까지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운이 좋아서 불의에 사고를 안 당하고 수명이 끝날 때쯤에야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비로소 인지하고 그제야 어렴풋이 알게 되겠죠. 평생 이용만 당하고 살았다는 것을요

물론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본인에 성취 하나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오면서 기회를 다 날려먹고 결국 자아실현도 못하고 다 늙어가지고 뒷세대들한테 '니들은 나처럼 살지 마라' 자조 어린 훈수를 둬봤자 예의 차원에서 하는 존중 이상에 존경이나, 대우를 기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 어떤 문화권에서나 본인 인생은 본인이 지혜롭게 잘 판단하며, 잘 살아서 행복을 얻고, 후배들 한태 대우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주인 아닌가요?

정신을 차리지 않고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누군가가 짜놓은 판대로 생각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생각과, 감정들이 외부에서 들어와서 내 안에서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지 내가 갖고 있는 욕구는 진정으로 내 욕구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해야 합니다

이제는 진짜 시간이 없습니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조금이라도 빨리 '자각'을 해야 합니다

자신의 내면에 깊숙이 감추어진 곳에 어떠한 생각과 감정들이 있는지 분명하게 알아야 해요

 

분명하게 알기 위해 첫 단추를 채우기 위해서 알아차림(사띠)을 시작하셔야 합니다

사띠를 하기 위해선 보통 전통적인 방법으로 명상을 이용합니다만 사실 꼭 명상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알아차림 하기

화병이 나는 가장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부들부들 거리는 게 빤히 보이는데 "난 괜찮아 나 화 안 났는데?"(웃음) 라며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일단 이런 가식의 기저에는 '에이 겨우 이런 걸로 화를 내면 안 되지.', '이런 걸로 화 내면 못난 사람 되는 거야', '다 내가 부족한 탓이지 뭐' 같은 정신적인 허세가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감정을 부정하면 안 됩니다.
이미 생겨버린 감정을 억누르는 데에는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이런 방법은 결코 합리적인 방법이라 할 수 없습니다

고작 감정을 삭이느라 하루에 주어진 에너지를 다 써버리실 거인가요?

 

감정의 화신인 여성들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기본적으로 감정은 관심을 받아야 비로소 해소가 되기 시작합니다

화가 나면 올라오는 감정을 무조건 잘못된 거라며 무시하기보단 감정이 존재할 만한 것이니까 여기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셔야 해요

일단 그 감정이 내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그 감정으로 인해 어떠한 행동이 하고 싶어 진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감정을 분별없이 배출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감정을 대책 없이 억압하는 것도 나중에는 결국 문제가 됩니다

 

맞아요 물론 감정은 바라볼 땐 아름답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사는 이유이기도 해요, 하지만 결코 그 감정으로 인해 존재가 송두리째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짐승들처럼 뇌에 편도체만 있는 감정체가 아닙니다

인간에 이마에는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전전두엽이 있습니다

고대에서는 그 부위를 제3의 눈이라 칭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정신체로서 감정을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개한테 목줄을 왜 채워 넣는 것일까요?

감정은 가만 내버려 두면 제멋대로 뛰어다닙니다

그래서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인간은 전두엽이 만들어지면서 정신이 발달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 순간 욱한 감정을 그대로 상대에게 쏟아붓기 전에 일단 그 욱한 감정을 먼저 인지하도록 합시다

자신에게 잠깐만!,  '아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 '근데 왜 화가 난거지?'라는 사인정도는 보내야 합니다

잠깐만 멈추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합시다

 

감정을 있는그대로 바라보아라

 

가령 회사에서 후배가 똥을 싸는 바람에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와서 깊은 화남이 올라오더라도 일단 한 호흡을 쉬는 겁니다

'진짜 돌아버리겠네, 바빠죽겠는데 쟤는 일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꾸 일을 만드네?, 정신 안 차리나? 아 진짜 열받는다 가서 뭐라고 좀 해야겠다 '

자동적으로 이러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재생되더라도 정신을 한번 감정에 집중해서 일단 감정을 인식하는 겁니다

 

'아 내가 지금 저 xx 때문에 화가 나있구나..

근데 생각해 보면 이렇게 화날만한 일은 아닌데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나? 하긴 요새 잠을 통 못 자긴 했어..

그리고 나도 신입시절에는 저렇게 실수를 했었지, 아마 내 사수도 나 때문에 열 꽤나 받았을 거야'라든가 '후배 책임이라고 만은 할 수 없지.. 내 지시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르지' 등등 이런 식으로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머릿속에서 논리적인 추론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유는 감정은 항상 우리에게 '결과'만을 전달해 주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감정 즉 스트레스는 원래 원시시대 때 생존의 무기였습니다

빠른 투쟁, 도피반응이 중요한 원시 시대에서는 편도체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이 논리적인 원인을 보여주지 않고
즉각적으로 움직이게끔 두려움, 분노, 욕구만 일으킴으로 행동해야 할 결과만 알려주게 된 것입니다

감정은 우리가 맹수로부터 빨리 도망가거나 싸우는데 최적화된 상태를 만들어 줍니다

이게 바로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이 관여하는 투쟁, 도피 반응입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의 스트레스는 대부분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에서 생기는 정신적인 문제인데 인간이 현대사회에서 생활하게 된 지는 매우 최근이기 때문에 우리에 몸은 여전히 직장 상사에게 혼날 때도 생명에 위협을 느낄 때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시작합니다

상사에게 혼나는 일은 딱히 생명에 위협이 될 만한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현대'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감정들이 이렇게 오류가 많기 때문에 할 일이 많아서 바빠 죽겠는데 감정 때문에

자꾸 쓸데없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니까 하나하나씩 감정들을 뜯어보고, 해체하며 감정이 생기는 논리적인 원인 결과를 알아가는 작업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선 이런 식으로 감정을 인지한 상태를 알아차림 '사띠'라고 합니다

감정을 인지한 상태에서 그 감정을 바라보고 3분 이상 집중하는 것을 '사마타' 즉 삼매에 들었다고 합니다

 

현재의 감정을 배제하고 지금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 것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 알려주신 위빠사나(분리하여 통찰하다)입니다

 

이러한 알아차림이 지속되지 못해서 일하다가 인간관계 때문에 힘든 상황이 되면 계속해서 울화통이 터지는 감정을 의미 없이 겪는 걸 반복하게 됩니다

감정을 분리하여 맑은 정신으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막연하게 문제를 탓하다가 결국 또 의미 없는 뒷담을 까거나, 술을 마시기보단 현실에서 문제를 해결하여 상황을 벗어나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만들어서 번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지  이상한 사이비교주들이 사기 치는 초능력 같은 걸 사용하는 게 아닙니다

 

몸에서도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원래 사띠는 단전호흡 즉 들숨, 날숨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정석이긴 합니다만

인스턴트에 길들여진 우리는 아마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는 게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일상생활에서 조금씩 정신을 사용하는 것을 추천드려요

 

실생활에서 습관적으로 짝다리를 짚고 있을 때 이를 알아차려서

한쪽만 짝다리를 짚으면 골반이 틀어지니

반대쪽 다리로 무게중심을 바꿔주어 골반에 균형을 맞춰주거나

아예 바른 자세로 서있는 식으로 자세를 고쳐주는 방식으로 응용할 수도 있습니다

서있을 때는 무릎을 살짝 굽혀주어 기마자세로 참장 수련을 할 수도 있을 테고요

(무릎에 각도로 난이도를 조절합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입으로 숨을 쉬는 구강호흡을 알아차려

코로 숨을 쉬는 비호흡으로 교정을 해줄 수도 있고요

무의식적으로 입으로 숨을 쉬는 습관을 알아차림으로

'아 내가 지금 폐활량이 안 좋아서 산소가 부족하니까

자꾸 몸이 입으로 숨을 쉬는구나 유산소운동 좀 해야겠는걸'

요런 식으로 추론이 확장될 수도 있겠네요

 

계속해서 몸 상태, 동작으로 확장하여

무의식적인 행동, 안 좋은 습관, 조급한 마음, 행동에 대한 생각/감정이
동반될 때 반응과 작용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감정이나 생각에 몰두하지 않고 제삼자로써 바라보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이것이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 습관화된 근거 없는 감정인지
아니면 사회적인 관념인지, 혹시 특정 집단에 편향적 이념인지 본질적으로 알아차려

현 상황이 왜곡된 기억인지, 올바른 기억인지
꾸준히 자각하는 연습을 하여 인식상의 오류를 수정하는 것입니다

 

생각과 감정은 그 자체로는 아무 힘이 없지만 그 생각이나 감정을 의식할 때 그 힘이 커지게 됩니다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슴근육에 의식을 집중하다 보면 보디빌더처럼 가슴근육을 움직일 수 있게 되고, 귀에 의식을 집중하다 보면 귀를 의념만으로 쫑긋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헬스를 할 때 이두운동을 하면서 팔에 이두 쪽에 의식을 집중하고 운동하면 효과가 배가되는 것이랑 같은 이치입니다

 

 

 

결론 - 일반인의 삶도 수행입니다

수행이란 게 꼭 머리를 밀고 출가하여 절에 들어가거나 산속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아닌, 현재의 삶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노력입니다

몸과 마음을 닦아 일상적인 몸과 마음의 상태를 초월한 '절대자유'를 얻는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 당장 그렇게까지 높이 올라가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지금 당장 내 몸과, 마음에 건강을 해치는 잘못된 생활습관 정도는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사띠)은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본질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첫 시작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정신을 적극 활용하여 감정을 다루는데 능숙해지면 나중에는 30m가 넘어가는 파도에도 압도되지 않는 노스쇼어 해변에 서퍼들처럼 거대한 감정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큰 에너지를 가진 존재가 되어 더 이상 아름다움과, 모험이 없는 무미건조한 삶에 방치되지 않고,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더 많은 드라마를 창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감정이라는 에너지는 정신에 그릇만큼만 담을 수 있고, 이 감정이 현실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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