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실존철학
4대 성인 중에서 가장 인지도 있고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은 성인을 꼽으라면 분명 예수님이실 겁니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으로만 봤을 땐, 솔직히 말하면 싯다르타나 공자, 소크라테스에 비해 사상의 깊이가 그다지 깊어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 이토록 강한 영향력을 행세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1.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사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사건은 인류역사상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전무후무한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 십자가로 범죄자를 처형하는 사건은 많았겠죠, 하지만 자칭 그리스도라는 한 남자가 던진 메시지가 엄청나게 충격적이었다는 뜻입니다
이게 얼마나 몇천 년을 앞서간 충격적인 사상이었냐면, 그때 당시 예수님과 동시간대에 살고 있던 인물들 중 아무도 그리스도가 '왜 자진해서 십자게 못 박혀서 죽으러 가는 건지' 이해 자체를 하지 못했습니다
'아가페'라는 형태의 '인류애' 개념은 2000년 전인 그때 당시에 '이스라엘'이나 '로마' 고대사회에서 아예 없는 생소한 개념이었기 때문입니다
세계역사가 예수님 태어나기 전, 후인 B.C와 A.D로 구분되듯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인류역사상 가장 파급력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 이전에 훌륭한 사상가와 성현들 또 위대한 왕들은 무수히 많았지만, 그 사랑의 범위가 아무리 커도 가족과 민족, 나라라는 개념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상식이 통하는 나라라고 가정했을 때, 나라를 위해 희생한 투사들은 대를 이어 존경을 받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연인이나 가족, 나라를 위해 십자가에 못밖히신게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가족과 나라와 인종을 초월하여 인류역사상 최초로 인간이라는 종 자체를 위하여 희생하여 몸소 본을 보이셨기 때문에, 온 인류에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아무리 깊다한들, 소크라테스는 결국 나라를 위해 전쟁터를 향했을 뿐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워서 영웅이 된들, 반대편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영웅으로 생각할까요?
이러한 점을 고려해 봤을 때, 예수님이 인류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보편적인 사랑'이었을 겁니다
너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마태복음 22장 39절)
예수님의 등장 이후, 지구역사상에서 최초로 '인류애'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2. 합리주의 철학의 '의미 없음'과 실존철학
20세기에 등장한 실존철학.. 여기에 선구자 역할을 한 것이 그 유명한 '니체'였죠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으리오,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야고보서 2:14 ~)
20세기에 이르러 세계가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점점 합리주의 철학에 의문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정신병자로 취급받던 니체가 재평가되고 프랑스에 '샤르트르'라는 철학자가 혜성처럼 등장합니다
여러분,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 같은 것들이 현실세계에서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결국 합리주의 철학은 현실에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안되는 '정신적 유희' 개념으로 근본이 생각놀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깨달음이니 알음알이니, 본질타령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고, 결국 현실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느냐 가 우리의 정체정을 나타냅니다. 안 그렇습니까?
석가모니나 공자 같은 위대한 성인들도 예수님과 비슷한 말을 아니 더 학문적으로 깊이 있게 파고들어 말씀을 하셨지만, 예수님이 유독 인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그중에서 예수님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같은 자신이 뱉은 말을 '행위'로써 실천한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이 잔을 피하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를 위해 스스로 화목제로 희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제로 인류를 자기 자신과 동등하게 사랑했기 때문이겠죠
※ 다른 성현들을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역할이 달랐을 뿐이죠. 부처님이 설법을 해주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으며, 학문적으로 길이 트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현시점에서 예수님 말씀은 로마 교황청이 권력을 잡기 위해 유리한 쪽으로 많이 편집되고 왜곡되었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성경에 나온 구절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 로마총독 '빌라도'는 유대인 제사장들에게 선동당한 대중들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십자가형'을 판결한 것으로 보입니다. 매우 꺼림칙해하는 묘사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도다" - 본디오 빌라도 (누가복음 23장)
그렇다면 이 사건이 과연 예수님이라는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병자라서 일어난 일이었을까요?
글쎄요..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 형벌을 받기 하루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며 담긴 심정이 일부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마가복음 14:32~)
이 구절을 보면 예수님이 딱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인간적인 면모 때문에 그리스도의 위대함이 더 부각되는 것 같네요
위대한 삶을 살다 가셨던 예수님께 한 수를 배우자면, 결국 철학은 우리가 실존하기 위한 일종의 툴에 불과합니다
행동이 받쳐주지 않는 철학은 '정신적 유희' 놀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직 어떤 방식이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철학을 통해 감을 잡으려 하는 것이지, 철학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깨달음이니 본질타령하는 것은 답이 안 나오는 문제를 풀겠다고 덤벼드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3. 깨달음, 철학.. 그놈의 정신적 허세 좀 그만 부리자
필자는 본질이 없는 철학을 갔다가, 올리브유를 쥐어짜 내듯이 답을 강제로 내야 한다면 답을 '윤리'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2000년 전에 가르쳐주시고 몸소 희생하며 본을 보여주신 그 휴머니즘 말입니다. 다른 말로 '인류애'라고도 하죠 깊은 철학을 알지 못해도 인간으로 태어나면 초등학생도 알법한 법칙입니다
너무 단순하고 소박한 진리라 그런지 많은 철학자들이 '더 있어 보이는 답이 없을까' 궁리하며 대를 이어서 여러 가지 이론들을 많이 만들어냈습니다만.. 결국 돌고 돌아 인류는 몇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원점으로 다시 돌아왔네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현재진행 중이고, 지구촌 곳곳에서 산발적인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말 재수가 없으면 우리는 최악의 사태인 3차 세계대전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고 싶지 않다면 다시 기본으로 돌아와서 '인류애'라는 개념이 다시 표면 위로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고행자들이나 브라만들은 얼마나 대단한 존재들입니까?
"고행을 닦는 것이 자각하는 것은 아니오. 고행쯤이야 물항아리를 나르는 하녀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탐냄이 없어 질투를 하지 않고, 남을 해칠 생각이 없으며 자비심을 기르고 번뇌가 없어 현재에 깨닫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