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태동 힌두교 '범아일여(梵我一如)'사상의 다음단계
불교가 탄생한 배경
힌두교에서는 우주자아 브라흐만(Brahman)이 있고 개별자아 아트만(Atman)이 있는데 이 개별자아인 영혼(soul)에 업(karma)이 붙어있어서 계속 몸을 바꾸며 윤회한다고 믿습니다
몸은 죽어도 이 아트만은 죽지 않으니, 힌두교의 경전인 바가바드기타에서는 이 아트만을 '영원불멸하며, 칼로도 벨 수 없고, 불로도 태울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개별자아인 아트만이 사실 브라흐마(창조주)의 분신이므로 본질이 같기에 수행을 하여 카르마를 정화시키면 아트만이 다시 브라흐만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즉 사실 '나'인 아트만과 '세상'인 브라흐마가 하나라는 의미가 '범아일여(梵我一如)'사상인것입니다.
'나'가 명상 같은 수행을 통해 '참나'를 찾으면 '나'와 '남', '나'와 '세상'의 구별이 없는 '범아일여'에 경지에 들어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브라흐만(하나님)은 우주의 아트만이요 아트만은 인간 안에 존재하는 브라흐만이다'
이 사상이 힌두교(브라흐만교)의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 힌두교에서 파생된 요가의 '쿤달리니'나, 참나(아트만) 체험 이러한 것들이 '주관적 체험'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 성령체험도 비슷합니다)
체험으로 가게 되면 '주관'과 '객관'이 분리됩니다
그 증거가 자신의 '체험'을 '객관적 진리'로 증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보편적 진리를 자각하게 되면, 그 극단에 이르러서는 '지식'과 , '경험'이 하나가 됩니다
즉 주관과 객관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념을 '서양철학'에서는 '사변철학'이라고 합니다
경험을 하지 않고도 순수한 사유를 통하여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는 철학입니다
힌두교는 이때까지 주관적 체험에만 머물러 있었지만, 결국 이러한 '주관적 체험'들에 의문을 품은 한 '사나이'가 등장하게 됩니다
'싯다르타'라는 왕족출신에 한 힌두교 수행자가 힌두교 스승을 통해 '범아일여'를 깨닫고, 부족하다고 느끼어 '극한의 쾌락'과, '극한의 고행'을 다 경험해 본 후에 비로소 보리수나무 아래서 위없는 깨달음 '무상정등각'을 성취하였고, 불교가 태동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설법으로 인해 소위 말하는 성자들의 '거룩한 체험'에 속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됩니다.
제법무아(諸法無我)
"무아의 가르침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변하지 않는 영원한 영혼의 개념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단순히 지적할 뿐이다."
찰스 S. 프레비쉬/데미언 키온
이때에 인도에서 그 당시 수행자가 할 수 있는 모든 체험을 몸소 겪고, 그것이 완전한 깨달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싯다르타'라는 분이 나타나 이 교리를 전면 부정하였으니, 그것이 무아(無我) 사상 즉 제법무아(諸法無我)입니다.
불교의 실상론은 부처님이 '무상정득 각'을 성취하며 깨달은 연기법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오직 연기에 의해 형성되고 소멸될 뿐 자성(영원불멸=아트만, 브라흐만) 이란 게 없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색은 성주괴공 하고 수상행식은 생주이멸 하니, 모든 것의 실체는 비어있음입니다.
이를 훗날 동북아에 대승불교에서는 이름하여 공(空) 사상 또는 반야사상( 般若思想)이라 표현하는데, 이는 결국 부처님의 무아사상의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괴로움의 원인을 무명의 어리석음으로 보았습니다
어리석음이란 : 영원한 무언가가 있음(영혼), 영원한 깨달음(진리) 이 있다는 착각을 말합니다
깨달음이란 이러한 상태를 벗어난 것이며, 벗어나는 것을 학습하고, 경험으로 체험한 상태입니다.
'화'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할 때 발생합니다.
동북아에 음양오행 이론에서 수->목->화가 되어 어리석음이 분노가 되듯이 말입니다.
즉 화가 나는 이유를 알아야 하고, 왜 화가났는지를 알아야하고, 왜 화를 낼 수밖에 없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럼 화를 낼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앎'으로써 '번뇌',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것 이것이 깨달음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이 오온(五陰) 즉 감각이나, 감정에 속아서 휘둘리는 것은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어리석기 때문에 사는 게 괴롭고, 불행하여지는 것인데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불행하게 살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열반적정이란 불이 꺼진 상태를 의미하며, 일체 괴로움이 소멸된 지극한 행복을 의미합니다.
제법무아(諸法無我)는 브라만의 아트만처럼 영원불멸의 존재 같은 건 없다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왜냐하면 '나'든, '남'이든 '세상'이든, '우주'든 만물 일체는 잠시도 정지하지 않고, 생멸변화하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기 때문입니다.
즉 삼라만상 중 영원한 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 삼법인중 무상이며, 무상하기 때문에 무아(자아 없음)라 하는 것이며 무상, 무아이기 때문에 일체를 고(괴로움)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무상하다는 것을 이해하면 무아를 알게 됩니다.
일체가 무상하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을 분들도 많으실 것이라 봅니다
초기불교의 핵심사상인 '연기법'을 대략적으로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연기법
"이 우주에 최고신이 있으니 그를 믿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라는 식의 사상의 의문을 품었던 싯다르타.....그는 그리하여 일체의 입증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교리들을 배제한 채 인간과 세계를 상식적인 기초 위에서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교가 다른 종교와 차별되는 점은 현실세계의 관찰부터 시작하여 궁극적인 원리 및 실재를 탐구해 들어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고'의 원인을 '갈애'로 보았습니다.연기법칙에 의하면 '나'와 '세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변화하고 있습니다.'나'라는 존재는 임시적 존재이나 과정적 상태에 있는데,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영원에 대해 집착하는 것을 고통의 원인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연기(緣起)란 즉 인연생기 인(직접적 원인)과 연(간접적 원인) "인연에 따라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
즉 영혼이나, 신 같은 어떠한 허구적 형이상학도 개입하지 않은 세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연기(緣起)라고 합니다.
모든 것은 상호 관계 속에서 성립하며 독립적인 것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단지 이렇게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있다는 단순한 인과론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나' 자체가 원인과 결과로 형성이 되어있다는 뜻입니다.
원인과, 결과 이 두 가지 개념이 어떻게 이렇게 끝없이 복잡해질 수가 있느냐? 라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무엇보다 어려워지는 것은 이러한 원인과 결과가 서로 연관되어 있어서 '나'와, '세계'가 독립적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원인들과 수많은 결과들의 상호 관계의 중첩과 얽힘 속에 형성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태어난 이유를 논할 때 "흙속에 생기를 부여해 주는 신의 능력 때문인가?"가 아니라, 갈애(渴愛) : 몹시 좋아하며 사랑함 인하여 취착(좋은 것을 취함)이 생긴다는 몹시 상식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습니다
고대에 신화적 시대를 배경으로 비추어보았을 때 무척 혁식적인 사고라 볼 수 있겠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러한 연기적 상태를 '자기 자신'인 '나'에게 적용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간을 신이 만든 위대한 창조물로 보는 게 아니고, '오온'이 집적된 상태로 본다는 것입니다.
오온이란, 색 수 상 행 식이라고 하는 것인데
색: 물질적 형태를 이루는 무리
수: 감정 및 감각의 무리
상: 표상 및 개념 작용의 무리
행: 의지 및 잠재력의 무리
식: 인식 판단의 무리
이러한 오온이 모여가지고 임시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그런 상태를 '인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모여 인간의 성립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또 다른 조건이 필요한데, 예를 들어 음식, 온도, 물 같은 것들에 '의지'를 해야 오온들이 쉽사리 흩어지지 않고 계속 뭉쳐있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러한, 음식,온도,물같은 것들 또한 끊임없이 '연기'되고 있으므로, 음식이 우리 입에 들어오기까지, 지구의 자전과, 공전 저기압과, 고기압에 의한 온도차이, 끊임없이 증발하고, 내리고, 흐르고 있는 물들이 우리 몸에 들어오기까지 수많은 '연기' 과정이 동시에 진행 중인 것입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서로 의지하고, 연관되어 구성되는데, 이러한 것들을 어디까지 봐야 하냐면 보이지 않는 우리의 마음, 의식까지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 감정은 다 내 감정인 것인가? 기분 좋은 상태였다가 화가 잔뜩나있는 옆사람에 무례함을 보고, 화가난 상태가 되었다면 그 화가난 감정은 외부로부터 오는 감정인것인가? 원래 내 안에 있던 감정인 것인가?
내 생각은 내 것인가? 내가 원래 하였던 생각인가? 아니면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생각인 것인가? 친구한태 영향받은 생각인 것인가? 가난으로부터 촉발된 생각인 것인가?...
물론 어느 정도는 내 의지로 인한 생각이겠지만, 내 의지가 외부에 자극을 받아서 변화하고, 그 생각이 꼬리를 무는 것 또한 변화한 내 생각이 또 다른 '남'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답도 없게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몸 안에 수십조 개에 세포들을 포함해서 내면에 있는 감정과, 생각 심리상태까지 싹 다 이렇게 원인, 결과들이 중첩, 얽혀있는 연기(緣起) 상태인 것입니다.
무한개의 원인과 결과가 얽히고, 설켜있는 것.. 그로 인해서 내가 통제할 수 없게 되어 발생하는 한계로 인한 '괴로움'..
이것으로 인해 일체개고(一切皆苦)라 합니다.
무한개의 원인과 결과를 우리같은 중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석가모니께서는 12연기로 함축적으로 정리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일체 괴로움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으로 가기위해 사성제인 '고집멸도'라는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해주셨는데, 추후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성제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고 : 괴로움 (문제의식)
집 : 원인 분석 (연기법 이해)
멸 : 목표 제시
도 : 방법 제시 : 괴로움의 소멸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은 8가지 팔정도로 나타납니다.